엄마와 외식을 할 땐 무엇을 먹을지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엄마는 면이나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모든 국수 종류와 햄버거ㆍ스파게티ㆍ피자는 제외다. 기름기 많은 중국요리도 질색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손자들을 위해 그냥 함께 먹어주는 정도다. 찌개나 탕은 건더기만 겨우 건져 먹을 뿐 국물엔 숟가락도 대지 않는다. 비싼 돈을 들여 왜 그리 밍밍하고 물컹한 걸 먹는지 알 수 없는 것, 바로 생선회와 초밥이다. 횟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 엄마 덕분에 물고기는 목숨을 부지한다.

엄마가 원하는 건 오로지 밥과 고기다. 특히 갈비는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가끔 먼저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유일한 음식이다. 소갈비도 싫고 한우도 싫고 오로지 돼지갈비다. “고기는 돼지, 돼지는 양념 맛이지” 엄마의 고기 철학이다. 나도 엄마처럼 갈비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양념 맛’ 때문은 아니다. 내게도 나만의 고기 철학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돼 2년 가까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외국 건설현장 인력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1년 기한의 해외 출장을 갔다. 엄마도 집에서 밤낮으로 전자부품 만드는 부업을 하며 최선을 다해 돈을 모았다. 학교 준비물 살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어두워지던 엄마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졌다. 집안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편안함이었다.

아빠가 외국에 간 지 석 달쯤 됐을 때 언니가 생일을 맞았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아주 맛있는 고기반찬을 해주겠다며 호언장담한 터였다. 생일날 저녁, 안방에 밥 네 공기만 있는 상이 들어왔다. 엄마는 다시 부엌으로 나가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고기반찬인가. 우리 셋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심혜진

드디어 안방 문이 열렸다. 넓은 접시 위에 반드르르 윤기가 나는 갈색 돼지고기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군데군데 검은 재가 붙어있기도 했다. “따뜻할 때 얼른 먹어. 엄마는 고기 더 구워야 해” 엄마가 방을 나가기도 전에 나는 벌써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이건 이전에 먹던 고기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1년에 한두 번 양념도 안 한 고기를 전기프라이팬에 허옇게 익혀 먹거나 아주 가끔 제육볶음을 맛봤을 뿐이다.

처음으로 ‘불 향’을 맛본 나는 눈이 동그래져 젓가락질하기 바빴다. 그런데 고기로 향하는 나와 동생의 젓가락을 언니가 손으로 막았다. “잠깐만. 엄마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 맞다. 이렇게 맛있는 건 같이 먹는 거랬다.

엄마를 기다리기엔 우린 배가 너무 고팠다. 게다가 눈앞엔 고기가 있다. “안 되겠다. 엄마 불러와야겠다” 언니가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나와 동생도 따라 일어났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이어진 문을 열자마자 우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부엌은 연기로 가득 차 난리가 난 상태였다.

연탄불 위의 석쇠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문 닫아! 방에 연기 들어가!” 언니는 문을 완전히 닫지 못하고 반쯤 연 채 “엄마도 같이 먹어요”라고 말했지만, 얼른 문 닫으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부엌문은 닫혔다. 문 앞에서 언니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도 울지 않았던 독한 언니가 울다니. 그런데 나도 자꾸 눈물이 삐져나왔다. 언니와 나, 동생은 부엌문 앞에 나란히 서서 엉엉 울었다.

엄마의 고생과 정성에 감동해 눈물이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면, 내 표현과 서사가 부족한 탓이다. 그날 우리의 눈물은 연기처럼 눈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처절한 가난을 통과해 이제 막 작은 빛을 보기 시작한 기쁨, 그간 쌓여온 슬픔과 우울, 힘든 나날에도 자존을 놓지 않고 살아낸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안도감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거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와 연기 속에 고기를 굽고 있는 엄마, 중학생인 언니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생, 그리고 나까지 그 조마조마한 삶을 함께 건넜다. 그러니 맛있는 건 함께 먹어야하는 것이다.

지난 어버이날에도 엄마와 돼지갈비를 먹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맛집을 미리 예약해뒀다. 이집 갈비는 잘 타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양념에 들어간 포도즙이 비결이라 했다. 평소 먹는 갈비에 비해 정말 덜 타고 맛도 좋았다. 하지만 내게 최고의 맛은, 너무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엄마가 연탄불에 구워준 그 불고기다. 앞으로도 그 맛을 넘어서는 건 없을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고기는 돼지, 돼지는 불 맛이다. 이게 내 고기 철학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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