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 (4) 푸른 방

쉬잔 발라동┃1923.┃메스 퐁비듀 센터

속옷차림으로도 이렇게 강해 보일 수 있을까. 정면을 응시하지 않지만 보는 이의 눈을 깔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다. 섹시는 언감생심, 우아한 드레스도 아니고 누드도 아니다. 파자마차림에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인. 침구 위에 놓여있는 책들은 그녀가 지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여자의 몸은 사실적이다.

모델의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이 그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자유로움’이다. 남의 시선에 구속은커녕 연연해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온 쎈 언니가 내게 ‘그래도 된다’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여자’라는 감옥에 갇혀 여자답다는 말을 만고의 칭찬으로 여기며 사느라 때때로 숨 막히던 내게 ‘네 맘대로 살아도 아무 일 없다’라며 툭 말을 건넨다.

이 그림은 쉬잔 발라동이 그린 ‘푸른 방(1923)’이란 작품이다. 본명 마리 클레망틴 발라동(1867-1938).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열 살부터 직공, 양재사, 청소부 등 갖가지 일을 전전하다 파리의 서커스단 무희가 된다. 행복도 잠시, 그네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서커스단에서 쫓겨난 그녀는 당대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 퓌비 드 샤반의 눈에 띄어 그의 모델이 된다.

모델을 하는 몇 년간 그녀는 화가의 작업을 눈여겨보며 남몰래 그림을 연습한다. 그녀의 그림에 화를 내는 그(=퓌비 드 샤반)를 떠나 다시 르노아르의 모델이 된다. 당시 모델이라 하면 화가의 정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열여덟 나이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들을 낳는다. 그 아이가 몽마르트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그녀는 몸도 추스르기 전에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르노아르 부인에게 쫓겨난 그녀는 물랭 루주의 화가 로트렉을 만난다. 그의 모델이 돼, 연인이 돼 지내는 동안, 로트렉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재능을 발견한다. 로트렉은 그녀를 인상주의 거장 드가에게 소개해줬고, 그녀는 드가 밑에서 그림을 배운다.

그녀는 드가를 만난 그날을 ‘내가 날개를 단 날’이라고 회고했다. 로트렉은 그녀에게 ‘쉬잔 발라동’이란 예명을 선물했고, 그녀는 평생 이 이름으로 살았다. 그 시절, 그녀는 로트렉에게 니체와 보들레르의 책을 빌려 탐독했다. ‘푸른 방’ 안에 책을 그려 넣은 이유가 있다.

드가는 그녀의 그림 세 점을 사주고 전시에 참여하게 도와주며 그녀가 화가의 길을 갈 수 있게 격려한다. 귀족 가문의 배운 여자도 화가로 성장하기 힘든 시대에 그녀는 오로지 재능과 노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 행로가 어찌 평탄했겠는가.

퓌비 드 샤반, 르노아르, 드가, 로트렉 등 인상주의 최고의 화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그렸지만 모두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각자 보고 싶거나 부각하고 싶은 면을 그렸을 테지만, 나는 로트렉이 그린 쉬잔을 좋아한다. 로트렉의 쉬잔엔 그와 그녀의 영혼이 녹아있다. 삶의 고단함, 가난, 때때로 엄습하는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의식, 모든 게 그림에 녹아있다 거기에 로트렉의 시선까지. 그녀를 성적 대상화하기보다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그 담담한 시선이 좋다. 그가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프레임 안에 살던 여자가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그리며 말한다.

“예술은 우리들이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만든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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