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

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벅차오르고 긴장감이 넘치던 그 순간에 남북의 정상이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던 국민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두 정상이 함께 걷기만 하는 장면 하나하나에도 중계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티브이 앞에 사람들이 서있던 모습은, 우리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나는 두 정상의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후 달라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설레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도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구나’ ‘북녘 청년들을 이제 만날 수 있겠구나’ ‘기차를 타고 넓은 대륙으로 여행을 갈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북미 정상회담이 더 중요하다고 주위에서는 떠들어대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 한반도 휴전선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내다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 하나의 트윗이 내 눈길을 끌었다.

‘통일 후에도 파리까지 기차로 못가요. 님들 휴가 그만큼 없어요’ 당시에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이야기네. 재밌다’ 하고 다른 소식을 보았지만, 그 이후에도 이 트윗은 내 머리 한구석에 계속 남은 채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곱씹어 생각해보니 해답이 나왔다. 남북 정상회담이, 평화협정이, 통일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야 있겠지만 청년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두 정상의 만남이 왠지 청년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은 사이비적 믿음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기에, 나는 이 트윗을 내 생각에서 지워내기 어려웠다. 그렇다. 통일 후에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면 노동자들에게, 청년들에게 여행 갈 돈과 시간을 줘야한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1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유급휴가 사용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조사를 시작한 2011년 이래로 6년간 꼴찌를 면하지 못하다가 2017년 처음으로 꼴찌를 탈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연차휴가 15일 중 사용한 연차휴가는 10일로 일본ㆍ대만과 같았고, 바로 아래서 휴가를 가장 적게 사용한 나라는 태국으로, 사용한 연차휴가는 8일이었다.

아시아ㆍ북미ㆍ남미ㆍ유럽 국가 30개를 조사했는데, 공동 1위를 기록한 브라질ㆍ프랑스ㆍ독일ㆍ스페인ㆍ핀란드는 주어진 연차휴가 30일을 모두 사용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위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연차휴가 사용에선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또한 <한겨레>에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가장 쉬고 싶을 때를 ‘몸이 아플 때(40.4%)’, 가장 원하는 휴식 방법으로 ‘집에서 쉬기(58.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아플 때조차 쉬지 못하고 집에서 쉬는 시간도 충분치 않은 그들에게 금강산 여행, 유럽 여행은 너무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평화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그 뒤에 노동존중도 따라올 것이다. 언젠가 평화를 따라잡을 날도 올 것이다. 하루빨리 평화와 노동존중이 가득한 한반도에서 노동자와 청년들이 편한 마음으로 경의선 열차에 올라 29박 30일짜리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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