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플라스틱 공들이 내 입 안에 가득 들어왔다. 삼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공은 점점 커졌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다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 검은 것이 어른거렸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내 목에 몸을 걸치고 엎드려 있다. 요 녀석 때문에 잠깐 낮잠도 못 잔다. 어쨌든 꿈이라서 다행이다.

봄에는 낮잠이 꿀맛이다. 한참 글을 쓰다가 뉴스를 보면서 쉬려고 누웠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 미세플라스틱 관련 뉴스를 본 것이 답답한 꿈의 원인이었을까. 미미를 버르장머리 없이 키운 탓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미세플라스틱 뉴스는 심각했다.

플라스틱은 당구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중 발명된 것이다. 당구는 옥외 경기인 크리켓을 실내로 옮긴 것이다. 당구대 바닥의 초록색은 잔디밭을 상징한다. 당구공은 아프리카 코끼리의 송곳니인 상아로 만들었는데, 상아는 비싸고 귀했다. 당구는 공 서너 개로 게임을 할 수 있었는데, 19세기 중후반부터 공 열다섯 개가 필요한 포켓볼이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국 술집엔 포켓볼을 치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상아 가격은 포켓볼의 인기와 함께 치솟았다.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무렵 미국의 한 당구용품 공급 회사가 상아 대체 재료를 발명한 사람에게 상금 1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이 글을 본 신문 인쇄업자 존 웨슬리 하이엇이 상금을 따기 위해 헛간에 실험실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셀룰로이드라는 최초의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이후 화학자들에 의해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나왔다.

플라스틱의 가장 큰 장점은 값이 싸고 활용도가 높다는 점이다. 어떤 모양이든 주물이 가능하고 경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얇고 부드러운 비닐이나 랩, 휘어지는 페트병, 단단한 그릇도 만들 수 있다. 가벼운 데다 유리나 토기에 비해 잘 깨지지도 않는다. 플라스틱은 어느 곳에나 쓰인다. 현 인류의 역사를 두고, 석기시대와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이제 ‘플라스틱시대’라 부르는 이도 있다.

세상 편리한 발명품으로 각광을 받은 지 100년도 되지 않아 지구는 온통 플라스틱 천지가 됐다. 플라스틱은 절대 썩지 않는다. 쪼개지고 쪼개질 뿐이다. 석유화학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전 세계에서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양은 모두 83억 톤이다. 이 중 약 63억 톤이 쓰레기로 폐기처분됐다. 재활용 비율은 고작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경향신문 2017.11.21.)

썩지도 않는 그 많은 폐기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입자, 즉 미세플라스틱이 됐다.
미세플라스틱의 성질은 플라스틱과 똑같다. 바다로 흘러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햇빛과 바닷물에 부식돼 작게 부서져 온 바다를 떠돈다. 그러다 물고기나 조개 등 해양생물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이것을 우리가 먹는다. 그럼 해산물을 먹지 않으면 괜찮을까?

미국 비영리 매체인 <오브 미디어>에 따르면, 세계 수돗물의 83%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미국은 94%, 유럽 지역도 72%에 달했다. 정수기조차 거르기 쉽지 않다고 한다. 한 번 몸속에 들어온 것은 잘 빠져나가지도 않는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 중이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

플라스틱 없는 삶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플라스틱이 침범하지 않은 영역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한쪽에선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간이 먹을 소의 사료로 옥수수를 키우더니 이제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숲을 옥수수 밭으로 밀어버릴 셈인 모양이다.

만일 포켓볼이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아니 코끼리의 송곳니로 당구공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니 실외 경기를 굳이 실내로 옮겨오지 않았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주어진 대로 살았다면, 플라스틱이 발명될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렵지만 어쩌면 아주 간단한 상상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