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가장 많이 퍼진 냉면은 ‘백령도 냉면’
집집마다 냉면 조리법 제각각...문전성시

평양냉면이 몰고 온 한반도 평화시대

남북정상회담 만찬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평양냉면의 인기가 대단하다. 인천에서 70년 넘게 평양냉면을 이어가고 있는 경인면옥은 물론 황해도식인 백령도 냉면을 파는 가게들도 20~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평양냉면은 남북정상회담을 다룬 외신들도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도 자신이 먹은 냉면과 가게를 각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소개하느라 분주하다. 이쯤이면 냉면은 남북화해를 넘어 지역에서 사회통합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가히 평양냉면이 곧 평화냉면이나 다름없는, 평양냉면이 몰고 온 한반도 평화의 시대요, 냉면의 전성시대다.

평양냉면을 계승한 인천 중구 신포동 경인면옥. 1946년 개업했다.

선주후면은 평양냉면에서 유래

우선 인천에서 평양 옥류관 평양냉면과 비슷한 맛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중구 신포동에 있는 경인면옥이다. 1세대 경인면옥 주인장은 1944년 서울에서 냉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1946년 인천으로 내려와 경인식당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었고, 대를 이어 오늘날 경인면옥에 이르고 있다. 자그마치 70년이 넘는 세월이다.

인천에는 황해도와 평안도 등에서 내려온 이들이 많다. 분단됐지만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래려 찾은 대표적인 음식점이 바로 경인면옥이다.

조미료에 입맛이 길든 이들은 평양냉면이 맛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슴슴한 맛, 밍숭밍숭한 맛이다.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도 기본적인 슴슴한 맛은 쉬이 변하질 않는다.

소 설깃살 등으로 육수를 내는데, 냉면기에 담긴 면이 다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처음에는 입맛에 낯설지만 이내 구수한 고기 육수향이 감돈다. 냉면이 나오기 전 컵에 나오는 육수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필자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방식은 '선주후면'이다. 말 그대로 술 먼저 마시고, 이어서 냉면을 먹는다. 선주후면은 평양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에서 감홍로주를 마신 다음날 냉면으로 속을 풀었다고 전한다.  

삶은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가 부족하다 싶으면 녹두빈대떡을 추가해 안주 삼고, 여기다  인천탁주 소성주를 곁들이는 게 인천에서 즐길 수 있는 선주후면의 일미다. 탁배기 한두 사발 비우고 난 뒤 먹는 평양냉면은 또 다른 맛이다.

몽고군이 독성 있어 퍼트린 메밀, 슬기롭게 바꾼 한민족

평양냉면에 사용하는 면의 주원료는 메밀이다. 밀가루나 전분과 달리 찰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끊어진다. 메밀 100%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전분과 밀가루를 섞는다. 비율은 주인장 말고는 모르는 법이다.

냉면에는 우리 민족의 슬기가 담겨있다. 메밀은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퍼트렸다. 메밀은 소화가 잘 안 되고 독성을 품고 있다. 우리 백성들에게 먹여서 탈이 나게 하려고 퍼트린 곡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슬기로운 우리 민족은 메밀을 곱게 빻아서 국수를 만들었고, 또 무와 함께 먹으면 소화가 잘되며 이뇨에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냉면에 무채가 나오는 이유다. 메밀은 여름에 더위를 식히고, 겨울엔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다. 피부를 맑게 하고 모세혈관은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백령도냉면. 백령냉면은 백령도에 직접 가서 맛보는 게 제일 맛있다.

인천에 가장 널리 퍼진 건 황해도식 백령도 냉면

인천에 가장 널리 퍼진 건 평양냉면이 아니라 황해도식 냉면인 백령냉면이다. 백령도 사람들이 인천 뭍으로 나와 정착하면서, 그들이 백령도에서 즐겨 먹던 냉면이 인천에 퍼졌다.

백령도 냉면은 지역별로 크게 사곶, 신화동, 중화동, 가을리, 진촌리 냉면으로 구분한다. 이중 본점이 백령도에 있고 인천에 분점을 낸 냉면은 사곶냉면과 신화동냉면이다. 육수와 면을 만드는 것이 가게마다 비법으로 전하는 비밀이기 때문에 각 백령도 냉면마다 해당 가족만 분점을 내고 있다.

백령도 냉면 중 가장 오래된 가게는 부평구에 있는 부평막국수다. 백령도가 고향인 장학봉 선생이 창업했고 올해로 45년 됐다. 그리고 이 부평막국수와 같은 집안이 운영하는 냉면집이 서구 심곡동 백령면옥과 제물포 스마트타운 건너편 백령면옥이다.

장학봉 선생은 뭍에서 백령도 냉면이 생소한 음식이라 생각하고 창업했다. 그러나 황해도 냉면을 만들면서 냉면이라고 안 하고 막국수라고 했다. 이 집안이 운영하는 가게는 냉면 대신 막국수라는 메뉴가 걸려있다.

막국수라 이름을 붙인 건 창업할 때 서민적인 이름인 막국수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냐는 강원도 출신 지인의 권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백령도 냉면은 동치미에 말아 먹는 강원도식 메밀막국수 달리 사골을 우려낸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이 특징이다. 백령도 냉면 또한 평양과 비슷해 주로 메밀을 주로 사용하지만, 고기육수를 사용하는 평양냉면과 달리 사골 육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육수가 더 뽀얗다. 

아울러 소뼈 외에도 돼지뼈나 야채 등을 같이 넣어 육수를 내기 때문에 평양냉면 육수보다 슴슴한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더하다.

부평막국수가 본점인 제물포 백령면옥(사진 왼쪽)과 백령도 냉면의 또 다른 형태인 남구 주안동 변가네 옹진면옥(오른쪽)

고기육수는 평양냉면이 일품, 사골육수는 백령냉면

인천에서 다음으로 오래된 백령도 냉면집을 꼽으라면 남구 주안동 제일시장 건너편 골목에 있는 변가네 옹진냉면이다. 1977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42년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이 대를 이어서 하고 있다.

변가네 옹진냉면은 백령도 냉면 중에서 육수가 가장 맑다는 특징이 있다. 감칠맛을 살리면서도 깔끔한 맛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육수에 얼음이 없는데도 시원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빈대떡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며, 냉면에 고명을 얹은 뒤 파를 얇게 썰어서 뿌려 넣는 특징이 있다.

백령도 냉면의 육수는 기본적으로 소뼈를 사용하지만, 가게 별로 소잡뼈나, 돼지뼈, 닭발, 야채 등을 같이 사용하는 데가 있고, 가게마다 그 비율과 비법이 다르기 때문에 육수의 빛깔과 맛이 각기 다르다. 가족들만 알 뿐이다.

메밀면을 제작할 때도 메밀껍질을 사용하는 가게가 있고, 안 쓰는 가게가 있으며, 밀가루와 전분을 사용하는 비율이 또 가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가게마다 내놓는 면수가 다 다르고 맛도 다르다. 당연히 녹두빈대떡과 수육도 가게마다 제각각이다. 직접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평양냉면과 또 차이가 있다면 경인면옥은 컵에 육수를 내주지만, 백령도 냉면은 면을 삶은 면수를 내준다. 면수가 나오는 집은 직접 면을 뽑는다는 얘기다. 백령도 특산품 까나리 액젓을 한두방울 넣어 마시면 구수함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남구 인천소방본부 앞에 있는 백령도 신화동이 본점인 신화동냉면(상호는 백령도냉면, 사진 왼쪽)과 사곶이 원조인 인천시청 앞 사곶냉면(오른쪽)

같은 백령도 냉면도 가게마다 육수와 면이 다 달라

부평막국수와 변가네 옹진냉면은 인천에 본점을 두고 있다면, 남동소방서 뒤편 백령도사곶냉면과 인천소방본부 앞 신화동 백령도냉면은 본점을 백령도에 두고 있다. 그리고 백령도 중화동 냉면과 가을리냉면, 진촌냉면은 아직 백령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우선 남구 인천소방본부 앞 신화동냉면은 백령도 신화동냉면의 외조카가 운영하는 가게다. 그리고 지난달 건설회관 인근에 개업한 백령도냉면은 인천소방본부 앞 가게 주인의 아들이 운영한다.

신화동 냉면의 특징은 육수가 변가네 옹진냉면보다는 뽀얗고 사곶냉면보다는 투명한데, 맛은 둘 보다 더 슴슴해 오히려 평양냉면 육수에 가깝다. 물론 이 맛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인 입맛이다.

신화동 냉면집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수육과 빈대떡 외에도 해삼수육이나 활어회를 팔기 때문에 선주후면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점이다.

인천시청 앞에 있는 사곶냉면은 백령도 사곶 출신이라 이름이 그리 붙었다. 원래 남인천세무서 근처에 있던 게 본점인데, 이게 현재 남동소방서 뒤편으로 옮겼다. 시청 앞에 있는 사곶냉면과 남동구 도림동 사곶냉면 모두 일가친척이다. 현재 도림동 가게는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사곶냉면 육수는 백령도 냉면 중에서 육수가 가장 뽀얗다.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살얼음 떠 있는 육수에 면을 말아 내놓는다. 감칠맛을 더하려면 까나리 액젓을 한두 방울 더하면 되고, 물냉면 같은 비빔냉면 또는 비빔냉면 같은 물냉면을 먹고 싶으면 반냉면을 주문하면 된다.

사곶냉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돼지고기 수육을 내놓을 때 꼭 돼지고기 껍질까지 있는 수육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백령도 냉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남동구 만수동에는 황해냉면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백령도식 냉면이 있다. 육수를 보면 변가네 옹진냉면과 부평막국수 그 사이 어디쯤일 것 같은데, 이 또한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백령도 냉면에 기반해 자체 브랜드로 탄생한 남동구 황해냉면(사진 왼쪽)과 함흥냉면을 44년째 이어가고 있는 부평역 앞 함흥냉면(오른쪽).

44년을 뽑은 함흥냉면과 서민 냉면 ‘세수대야’

인천에 평양냉면과 백령도 냉면만 있는 게 아니다. 평양냉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냉면, 바로 부평역 삼화고속 정류장 건너편 로데오거리 음식 골목 안쪽에 있는 함흥냉면이다. 올해로 44년 됐다.

함흥냉면 주인장은 호남사람이다. 고(故) 배용철 선생이 서울에서 함흥냉면 조리법을 사사 받고 부평에 내려와 터를 잡았다. 현재는 배용철 선생한테서 배운 조리장이 함흥냉면을 만들고 있다.

함흥냉면의 특징은 우선 면이 다르다. 함흥냉면은 평양냉면과 달리 감자 전분 또는 고구마 전분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거기다 메밀을 섞어 반죽해 면을 뽑는다. 평양냉면이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라면, 함흥냉면은 끊어지지 않고 오래가는 질긴 맛이다. 그리고 물냉면보다는 회냉면이 대표 냉면이다. 가자미식해나 명택식해를 얹어 비벼 먹는다.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서민 냉면 중 하나는 바로 ‘세수대야 냉면’이라는 애칭이 붙은 동구 화평동 냉면이다. 닭발로 만든 육수에 동치미나 오이냉국을 섞어 육수를 만들고, 면은 뽑는 게 아니라 시중에서 판매하는 면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사연은 이렇다. 80년대 초반 화수동은 공장지대였고, 노동자와 대건고 학생 등 주머니는 가볍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배부르게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장사를 생각한 끝에 시중에 파는 냉면사리로 양껏 먹을 수 있게 한 세수대야 냉면이 탄생했다.

평양 출신 할머니의 딸이 가게를 낸 후 택시기사들이 양 많고 저렴한 냉면에 대해 입소문을 내면서 80년대 중반 무렵 유명해졌다. 여기도 일가를 이루고 있는데, 할머니의 딸이 시작한 가게가 잘되자 그의 아들과 딸들도 근처에 냉면집을 차린 게 오늘에 이른다.

새터민이 운영하는 평양냉면은 일베유저 논란에 문닫을판

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주목을 받는 가게도 있지만, 시민들로부터 지탄받는 가게도 있다. 연수구 평광옥은 탈북 인사가 운영하는 평양냉면집인데, 대표가 과거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조롱하는 ‘폭식투쟁’에 참가하고, 또 스스로 일베유저임을 인증한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해 탈북인사는 그때 자기는 대학로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평양마리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변희재 대표가 동아일보 앞에서 애국콘서트를 한다고 해서 자기 공연의 티켓을 나눠주려고 갔고, ‘멸공의 횃불’ 등 군가 릴레이에 기분이 좋아 같이 놀았던 게 동영상에 찍혔을 뿐인데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며 억울해했다.

일베유저 인증 논란에 대해서는 당시 농협에 대한 북한의 디도스 공격을 일베가 강하게 비판할 때라 같이 참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여론이 싸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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