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16. 타슈켄트, 민우르크성

최근 천정을 씌운 민우르크 성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울퉁불퉁하던 거리는 번듯한 대로가 됐다. 옛 소련 시절의 우중충한 건물들도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하다. 몇 년 사이, 구태를 벗고 유럽의 도시 풍으로 변모하고 있다.

도시인은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시간에 쫓길수록 생활은 더 불편하다. 그래서 도시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불편함을 개선한다. 문명은 항상 도시를 발전시키고, 도시인은 그 혜택을 받아 수준 높은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문명의 힘이 발산되는 곳, 도시의 생명이자 존재이유다. 그러한 도시인이 다른 도시로 힐링을 떠나면 그곳에서는 문명과는 비껴선 자연적인 삶을 찾는다. 인간은 하루도 문명생활을 못하면 어딘가 불편하고, 문명생활이 넘쳐나면 또한 피곤해하는 존재인가.

타슈켄트는 8세기에 석국(石國)으로 불렸다. 도성(都城)은 민우르크였다. 민우르크 성은 750년에 고구려 유민(遺民) 출신의 당나라 장군인 고선지(高仙芝)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함락된다. 고선지 장군은 파미르 고원을 세 번이나 넘어 중앙아시아 지역과 파키스탄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천하무적의 장군이었다. 그러한 위세의 고선지 장군이 또 다시 파미르를 넘어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니 석국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석국의 왕 투둔(Toudoun)은 항복했고, 고선지 장군은 왕을 장안으로 압송했다.

10여 년 전의 민우르크 성터.

당나라의 식민지 지배 원칙은 ‘기미’ 정책이다. 고분고분하면 고삐를 느슨히 풀어주고, 반항의 기미라도 보이면 고삐를 틀어쥐어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안서절도사인 고선지 장군도 이를 잘 활용했다. 석국의 왕은 조공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이는 고선지가 총괄하는 당의 서역 경영에 도전하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특히, 우마이야 왕조의 몰락과 함께 신흥 제국으로 부상하는 아바스왕조가 기세등등하게 영토를 확장하려는 때이기도 했다.

서역 경영과 확장을 책임지고 있는 장군에게는 왕조 교체기의 각축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화뇌동하는 속국들의 행동은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석국 정벌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고선지 장군의 서역 경영에 대한 확고부동의 의지를 천명함과 동시에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수도로 압송한 석국 왕 투둔이 문신들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속한 왕에게는 별도의 직위를 주고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그런데 어째서 포로인 왕을 처형했을까. 석국왕 투둔은 세 번이나 약속을 어겼다. 고선지가 분노한 것도 밥 먹듯 하는 석국의 약속 위반이었다. 당 제국의 중심부인 장안도 석국에 대한 배신감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 결과 신의(信義)를 중시하는 당 제국을 무시한 처사를 엄벌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이 사건은 이슬람 국가들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1년 후, 아바스 왕조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는 탈라스전투에서 고선지 장군의 당나라 군대를 격파한다. 그들의 분노가 이슬람의 단결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서역 경영에 치명타를 입는다. 고선지 장군을 필두로 세계 제국으로 치닫던 당 제국은 이슬람의 힘에 밀려 실크로드에서의 전성기를 마감하고 말았다.

천 삼백 년 전의 민우르크 성터로 향한다. 성터는 십여 년 전만 해도 많이 훼손돼있었다. 집들이 성벽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서 남은 성터는 몇 십 미터에 불과했다.

무너져 내린 성터 사이로 약 2센티미터의 불탄 토층(土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색 지층을 손으로 파내자 뼈와 토기 조각이 나왔다. 고선지 군대의 석국 정벌 당시의 흔적이 여실했다. 그날, 고선지 부대의 말발굽에 짓밟힌 아비규환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 성터를 다시 찾았다. 성벽은 H빔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성터의 흔적은 남아있을까.

성벽에 박혀 있는 토기 파편과 불탄 토층.

민우르크 성터는 타슈켄트 역 건너편에 있다. 빼곡한 건물들 사이 후미진 골목길, 못 보던 토담으로 둘러쳐진 건물이 보인다. 민우르크 성터다. 예전에 남았던 성벽들도 사라졌다. 빵조각 썬 것처럼 동강난 성터. 대여섯 군데 H빔 기둥을 세우고 천정을 덮은 크기만이 도성 터의 전부다. 절개된 성벽엔 식당이 들어섰다. 둔덕처럼 남아있는 성벽은 여기저기를 깎아서 계단을 만들었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성터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가득하고 오늘도 계단을 오가는 발자국에 무너지고 있다. 계단 구석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것 같은 토기조각을 늘어놓았다.

고선지 장군의 석국 정벌에도 남아있었던 성벽은 이제 도시 개발의 와중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인가. 민우르크 성의 십년간 변모를 살펴보고 있노라니 마치 내 소중한 물건이 자꾸만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황당하고 당혹스런 현장에서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은 공염불이요 말장난일 뿐이다.

도시 문명의 변화는 이 시간에도 가속된다. 하지만 문명은 역사와 전통의 보존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 전통과 자부심은 파괴 위의 건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운 발전 위에서 유구한 멋과 맛이 우러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오늘도 지구촌의 옛 도시들은 제 멋대로 부서지고, 새로운 도시들은 분주하게 건설된다. 파괴와 건설의 반복. 인류 욕심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성벽을 절개하고 들어선 식당.
관광용으로 파헤쳐진 성벽.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