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23)

나뭇잎 사이로는 시민기자들의 환경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안이했다. ‘나뭇잎 사이’로 지난 번 글을 읽을 때까지도 나는 폐비닐 수거 거부가 일부 지역에 한정된 일인 줄로만 알았다. 고작 2주 사이에 내게도 악몽은 현실이 됐다. 우리 동네 아파트 재활용쓰레기 수거업체들도 이제 비닐과 스티로폼을 가져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음식물쓰레기 세대별 계량시스템(RFID)을 도입하겠다는 공지도 함께였다. 별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버리던 지난 습관을 이제는 돌아봐야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방만했던 내 소비생활을 반성한다. 삼십대 중반이 돼서야 아파트에서 처음 살아봤다. 주택가에 살 때엔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일일이 따로 묶은 다음 정해진 요일에 맞춰 배출해야하는 게 번거로웠다. 아파트단지에선 대형 자루에 휙휙 던져 넣으면 끝나니 여간 편한 게 아니었다. 빌라 살던 시절 전용 종량제봉투에 담아 내놓는 음식물쓰레기 부피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매번 물기를 짜내던 고역과도 이별이었다.

편리한 ‘분리배출’의 면죄부였다. 더 많이, 자주 내놓아도 내가 손해 볼 일 없으니 쓰레기양을 줄여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용물보다 포장지 양이 더 많아 처음에는 영 어색했던 택배쇼핑도 어느 틈에 자연스러워졌다. 지난 5년간 우리 국민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약 1.4배 늘었고, 1인당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2위란다. 분리수거 대란의 바탕엔 급증하는 재활용쓰레기 배출량이 있다. 근본 해법은 줄이는 데서 찾아야 옳다.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편안하고 방만했던 내 생활은 귀찮은 짐을 대신 떠맡아줬던 다른 이웃, 다른 나라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걸 여태 몰랐다. 돈이 되는 폐지와 고철을 가져가려면 수익성은 거의 없는 폐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까지 감수해야했던 재활용업체의 고충을 몰랐고, 아파트 입주민과 업체 사이에서 온갖 번거로운 일을 도맡아야하는 경비원들의 사정을 모른척 했다. 골칫덩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번 같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이유가 중국이 수입해준 덕택이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건설업자로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을 반성한다. 사무실에서 내근할 때엔 작은 커피믹스 봉투까지 분리해 봉투에 담지만, 분리 처리가 난감한 건설 현장에서는 가리지 않고 그냥 마대에 모아 버린다. 자재를 포장하거나 오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비닐, 도배작업 할 때 생겨나는 폐지, 인테리어 소품을 설치하면서 나오는 플라스틱 부산물들을 모두 한 데 섞어, 공사 한 번 할 때마다 평균 1톤 트럭 한 대 분량씩 나온다.

이런 소량의 건설폐기물은 대개 자치구마다 한곳 씩 있는 중간처리집하장으로 집결된다. 집하장에서는 폐콘크리트나 폐목재, 고철 등 재활용이 될 만한 것들을 선별한 다음 남겨진 ‘혼합폐기물’ 중 일부는 소각장으로, 대부분은 잘게 짓부수어 매립지로 보낸다. 나뿐 만 아니라 모든 업자들은 다 이런 방식이다. 내가 더 신경 쓴다면 혼합폐기물로 섞여들기 전에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최대한 가려낼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 마음이 괴로워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건설폐기물’이라는 또 다른 분리배출제도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또 하나의 면죄부인 셈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인천 앞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가 세계 2위에 오를 정도로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매립지에 묻힌, 내가 버린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서서히 분해되어 한강물을 타고 흘러들어간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내가 누렸던 풍요가 내 목을 죄는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 면죄부를 남발한 결과가 파국이 되지 않으려면 반성을 넘어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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