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15. 아랄해, ‘무이나크

황폐한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

배들의 무덤으로 변한 무이나크 항구.

길을 나선 지 몇 시간이나 흘렀던가. 자동차는 아직도 황량한 벌판을 달리고 있다. 저 멀리 웅대한 고원이 펼쳐진다. 아랄해의 경계선인 우스튜르트 고원이다. 가파른 언덕은 무너지고 패인 흙들로 요새를 이뤘다. 허리도 뻐근한데 내려서 걸어 올라야하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도요타 랜드크루져는 한 번의 용씀으로 아무렇지 않게 오른다. 탄성을 내뱉는 순간 허리 통증도 바람처럼 사라진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서쪽 끝 카라칼팍스탄 자치구의 수도 누쿠스. 이곳은 아랄해를 가는 출발점이다. 아랄해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있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줄곧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 지금은 거의 메말라버렸다. 거대한 호수가 어째서 황폐한 사막으로 변하고 있을까.

아랄해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강이 원천이다. 이 두 강은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사막을 적시며 모든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카라반들이 실크로드 사막길을 무리 없이 오가던 것도 이러한 생명수 덕택이었다. 하지만 옛 소련 시절, 상류지역에 댐을 만들어 물을 가뒀다. 댐을 나와 흐르는 물은 중류지역 사막에 일군 면화 밭으로 들어갔다.

사막에 건설한 운하는 관리 소홀로 많은 양의 생명수를 모래밭에 흘려버렸다. 어렵게 하류지역에 도착한 강물은 또다시 벼를 재배하는 논에 채워졌다. 카라칼팍스탄에서 아랄해에 이르는 수백 킬로미터의 물길은 50년 사이 97%나 줄었다. 아랄해는 연간 강수량이 100mm가 안 되고, 연간 증발량은 900mm에 달한다. 황폐한 사막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강렬한 태양도 제풀에 꺾일 무렵, 멀리 코발트빛 호수가 보인다. 어느덧 8시간을 달려왔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와 볼 수 있는 아랄해. 호수의 물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다시 메마른 호수바닥을 달린다. 열풍에 출렁이는 물결은 호수바닥을 고약한 갯벌로 만들어놓았다. 떼죽음한 패류가 발길에 채이고 염전인 듯 두터운 소금은 거품을 토해낸다. 사해보다도 염분이 강한 아랄해가 사람들을 둥둥 띄운다. 눈이 따갑다. 죽은 호수가 내뿜는 독기가 열풍을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간다. 날아오른 소금먼지는 초원과 밭을 오염시키고, 이를 먹고 자란 가축들은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 아랄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간들에 대한 아랄해의 복수가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성기 아랄해의 최대 어항도시 무이나크

아랄해의 경계선이었던 우스튜르트 고원.

무이나크, 전성기 아랄해의 최대 어항이었던 도시. 지금은 배들의 무덤으로 변했다. 150킬로미터 이상 후퇴한 아랄해는 무이나크를 사막으로 만들었다. 4만명에 이르던 인구도 반으로 줄었다. 사막 위에는 철갑상어ㆍ잉어 등을 잡던 철선들이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채 오늘도 열풍에 부서지고 있다. 언덕 위에 세워진 박물관에는 그 옛날 풍요롭던 무이나크가 몇 장의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무이나크 항구는 역사를 넘어 아득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소금먼지 날리는 무이나크엔 허름한 집들과 무너져 내린 담장이 여기저기 보인다. 영화로움은 영원한 것이 아니니 가꾸고 지키지 않으면 언제고 쇠락한다. 풍요로운 생명수를 지키지 않은 인간들. 그들이 폐허로 만든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고 섰다. 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저들이 살아갈 생명수 넘치는 곳은 어디인가. 역한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너희가 만들었으니 너희에게 그대로 주리라’
아랄해 바닥을 달린다. 믿어지지 않는 길을 믿을 수밖에 없다던 노인의 눈이 응시하던 그 곳. 사막의 풀들이 호수바닥을 덮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물고기가 다니던 곳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자동차가 질주한다. ‘상전벽해’는 꿈이고, ‘벽해사막’은 현실이 됐다.

버드나무와 흡사한 나무들이 빼곡하다. 사막화 방지를 위해 심은 카라바락나무다. 염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가 있다니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인가. 하지만 누구도 옛날의 무이나크를 꿈꾸지 않는다. 배를 타고 싶은 사람들도 없다. 이제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대신 아랄해 바닥에서 가스를 캐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가스 채굴이 한창인 아랄해

죽음의 바다로 변한 아랄해.

황무지를 100여 킬로미터 달렸다. 갑자기 오래된 아스팔트길이 펼쳐진다. 바다였던 호수바닥을 언제 적에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길인가. 그뿐 아니다. 전선줄은 황무지를 끝 모르게 종횡한다. 전선줄과 함께 달리다보니 여기저기 가스관이 보이고 드문드문 불꽃을 내뿜는 가스 탑이 보인다. 주변엔 ‘흡연금지’ 팻말이 삼엄하다.

사막이 된 아랄해에 거대한 가스채취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아랄해는 자신의 살을 다 발라먹은 인간들이 골수까지 파고들 것을 예견하였던가. 스스럼없이 파이프를 꽂고 열기를 불태운다. 인간이 영장(靈長)이라는 것은 스스로 착각한 것이다. 인간은 철저한 약탈자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파괴하고 약탈한다. 균형과 조화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사욕을 위해 누구보다도 빨리 파괴하고 차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끝은 자명하다.

오래 전, 아무다리야 강은 ‘미친 물’이라고 불렸다.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엄청난 양의 강물이 아랄해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친 물’이 그립다. 아니 간절하다 못해 뼈에 사무친다. 하루도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미친 물’을 마구잡이로 끊어 놓았기에 이제 인간이 죽게 된 것이다.

아랄해는 ‘섬들의 바다’라는 뜻이다. 삼백 개의 섬 속에 풍요롭던 아랄해는 돌이킬 수 없는 황폐함에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오늘도 약탈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이 멸망해야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랄해 바닥에서는 가스 채굴이 한창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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