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닐 때 반 친구들의 보충수업비를 내가 걷게 됐다. 1990년대엔 수학여행비나 보충수업비처럼 수업료 이외에 필요한 비용은 반마다 현금으로 걷어 담임에게 내야했다. 그때마다 학생들 중 한 명이 그 일을 담당했다. 학급 간부도 아니었는데 왜 내게 그 일을 시킨 건지, 그때도 지금도 모른다.

보충수업비는 몇 천 원 정도로 큰돈은 아니었다. 대부분 기한 내 돈을 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끝까지 내지 않았다. 어서 달라고 말해야했지만 망설이기만 했다. 그 친구의 집안 사정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집을 나가 할머니와 살고 있는데, 몹시 가난한 데다 할머니 건강도 좋지 않아서 점심도시락도 자주 못 싸온다는 거였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기한이 지나버렸다. 얼마 안 되는 내 용돈으로 보충수업비를 메우기로 했다. 담임에게 지적받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에게 말했다. “내 돈으로 냈으니까 나한테 갚으면 돼”

일주일쯤 지났을까. 여전히 돈을 갚지 않았다. 내 용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집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떡꼬치 사먹는 게 낙이었는데, 그마저도 못 먹을 지경이었다. 나는 볼멘소리로 단짝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다음날이었던가. 점심시간에 단짝친구가 내 팔을 툭툭 쳤다. “야, 쟤 좀 봐” 그 애가 뭔가를 먹고 있었다. 학교 매점에서 팔던, 과자보다 값이 조금 비싼 크림빵이었다.

ⓒ심혜진.

“쟤, 너한테 돈 갚았냐?” “아니, 아직” “와, 근데 크림빵을 사먹어? 양심이 없네” “밥 대신 먹나보지 뭐” 이해하는 듯 말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나는 떡꼬치도 못 사먹고 있는데 그 애는 눈앞에서 크림빵을 먹고 있다. 배신감이란 게 이런 걸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애의 눈빛에서 당혹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궁핍함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기로 했다. 엄마는 별 소리 없이 용돈을 추가로 내줬다. 친구에게 돈 달라고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칠 후, 그 애가 내게 1400원을 내밀었다. “미안, 나머지는 다음에 줄게” 황급히 돌아서는 그 애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 짧은 순간 마주쳤던 그 눈빛과 ‘1400원’은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어쩌면 크림빵을 먹는다는 이유로 그 애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본 내 자신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이 분식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걸 본 한 시민이 “점심 먹으러 갔다가 기분을 망쳤다.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할 일이냐”며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회자됐다. 이 일을 SNS에 올린 작가 표범은 자신의 일화도 함께 소개했다. 작가는 집안 환경이 어려운 여중생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쳤다. 생일을 맞은 학생에게 틴트를 선물했다. 단돈 3800원짜리임에도 아주 좋아하는 모습에 오히려 민망했단다. 그런데 며칠 뒤, 그 학생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학교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틴트 살 돈은 있나보다?’라고 하셨어요”

가난하다고 해서 비굴하게 살아야하는 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행복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경쟁과 각자도생,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에선 이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기 쉽다. 다행히 그 친구의 눈빛이 나를 일깨운다. 가난한 너도, 부족한 나도,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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