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 (2) 조반니 벨리니의 ‘순교자 성 베드로의 암살’

영화 ‘공동정범’을 봤다. 2009년 1월 20일, 남일당 건물 망루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헸다. 검찰은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라고 결론짓고 철거민 25명을 공동정범으로 묶어 형사 처벌했다. 이 사고로 징역을 살고나온 5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영화 ‘공동정범’이다.

영화 시작 부분에 철거민 진압 장면이 나온다. 물대포를 쏘고, 불길이 치솟고, 비명과 고성이 오간다. 아비규환이다. 이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듯 동이 터오고 화면 뒤 고층 아파트에는 불이 켜진다. 두 세상은 마치 합성해놓은 듯하다. 진압당한 철거민들은 하나둘 경찰버스에 태워지고 아무 일 없듯이 상황은 종료된다.

이 사건에 대해 몇몇은 목소리를 냈으나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고, 대다수는 나처럼 무관심하거나 알고도 침묵했다.

순교자 성 베드로의 암살(조반니 밸리니, 내셔널 갤러리, 런던).

조반니 벨리니(이탈리아, 1430-1516)가 1507년께 그린 ‘순교자 성 베드로의 암살’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왼쪽에 베드로가 칼에 찔리고 있고, 정면에는 보조 수사 한 명이 잡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배경은 숲속이다. 모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처럼 평화롭게 나무를 베고 있다.

눈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리는 끔직한 상황에도 놀라거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16세기 초에도, 지금도, 현실은 다르지 않나보다. 벨리니는 비극적인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주변에 무관심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표현하는 게 정확할까. 나는 그림 속 나무꾼들처럼 나무를 하고 있었다. 당장 땔감이 필요하니까 성실히 내 일을 했다. 열심히 사는 건 위대하진 않더라도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일까.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간차를 두고 남에게도 일어난다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 날벼락 같은 일은 부지불식간에 덮쳐와 삶을 파괴하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할까.

영화 속 생존자들처럼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나또한 내 귓속에 에프킬러를 뿌릴지도 모른다. (영화 속 생존자 중 한 명은 사고 후 불면과 이명에 시달리다 자기 귀에 에프킬러를 뿌리고 피가 줄줄 흐를 때까지 팠다고 한다.) 그러니 무관심은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죄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나 혼자서 뭐를 어떻게 해. 나 따위가 떠든다고 세상이 바뀌나? 이런 생각에 모른 척 눈감은 내가.

영화가 끝나고 이 다큐를 만든 감독 두 명과 다큐 속 생존자 두 명의 GV가 진행됐다. 응원과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생존자에게 다가가 아직도 움츠려있는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피해자들끼리 누구의 피해가 더 큰지를 따지는 건 얼마나 서글픈지. 가해자들은 어디가고 피해자들끼리 생채기를 내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비참이다. 지옥 같은 불길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 원망과 분노로 얼룩진 시간을 보내는 동안 타인의 고통에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영화도, 그림도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도 구경만 하는 우리도, 권력을 쥐고 가해하는 자들과 공동정범이 아닌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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