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 아주대 교수, 383회 새얼아침대화서 강연
“세상을 떠도는 이전 세대의 목소리를 기록하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 11일 열린 383회 새얼아침대화에서 ‘인생극장, 가장 한국적인 삶의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고 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가 11일 인천 송도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383회 새얼아침대화에서 ‘인생극장, 가장 한국적인 삶의 보고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노 교수는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노 교수의 최근 저서 ‘인생극장’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의 인생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평범한 이들이 유언으로 남긴 ‘심정(心情)’의 의미와 세대갈등 극복방안을 설명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심정

사람은 살아가면서 응당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정’을 가진다. 권력자들의 심정은 외부로 많이 노출되기 마련이고, 타인들이 그들의 인생을 대신 기록해준다. 그러나 평범한 이들 역시 저마다 심정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은 물론 자신마저도 본인의 심정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동시대를 함께 보낸 이들은 공통의 사회적 경험을 겪으며 그 세대만의 심정을 가진다. 하지만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심정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너무나 평범했기에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고 쓰이지 않아 배회하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는 아들로서, 사회학자로서, 이들의 기록을 하나하나 수집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세 가지 언어 욕과 어머니의 이름 없는 삶

아버지는 1924년, 어머니는 1936년에 태어나셨다. 올해 출간한 책 ‘인생극장’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당신들의 인생을 정리해 대신 쓴 자서전이다. 두 분 다 대단한 인물은 아니셨다. 살고 있던 경기도 파주를 벗어나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아버지와, 무명의 삶을 살았던 가정주부 어머니는 1960년대에 태어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셨다. 청소년기에, 청년기에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노출돼야했던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질문은 부모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심정을 기록하기 위해 부모님의 증언과 영화 관람, 현장답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치매 증상이 있었던 아버지는 분노를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욕을 거침없이 내뱉어 해소했다. 아버지는 본인의 인생을 왜 세 가지 언어의 욕으로 정리했을까. 반면, 항상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사셨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대조적으로 임종의 순간까지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대비는 단순히 부모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 한국 남자와 여자가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녔다. 굉장히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천황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우며 일상화된 폭력을 체득했을 것이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유로운 발전은 허용되지 않았다. 소학교 졸업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해 평범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20세가 된 아버지는 징병제로 바뀐 일제 군사정책에 따라 일본 나고야로 끌려가 군인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그 당시 선전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가는 확대된 가족이며, 개인은 국가를 가족처럼 여겨야한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학습했다.

아버지는 국가에 무엇인가를 요구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시민적 요구를 불경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개인이 국가에 기꺼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항상 아버지와 충돌했다. 아버지가 남겼던 일본어 욕은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생긴 심정들이 표출된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는 두 번째로 영어 욕을 남기셨다. 해방 후 천지개벽한 세상에서 한국은 영어를 사용해야 돈을 버는 사회가 됐다. 변변한 사업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한에 주둔한 미군부대 근처에서 미군들을 상대해야 했다. 부모님은 미군이 주둔한 파주로 거주지를 옮겨 ‘레인보우 클럽’이라는 술집을 운영해 달러를 쓸어 담았다. 먹고 살기 위해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50년대에 아버지는 날마다 미군을 상대하며 온갖 실랑이와 악다구니를 감당하셨을 것이다. 이것이 영어 욕을 남기신 이유라고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는 창신동의 가난한 집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조카를 등에 업고 피란길에 올랐고, 전쟁 통에 부모님을 잃었다. 파주에서 달러를 많이 벌었던 아버지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멋도 내는 신사가 됐지만,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결혼한 어머니는 술집 ‘양공주’들 틈에서 정숙한 어머니가 돼야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어린 나이부터 여자의 인생은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시대 분위기를 주입받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 삶의 강력한 동기는 본인이 잘 사는 것보다 자식을 출세시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과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나는 부모님과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이전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기에 가능했다.

떠도는 말과 유산

우리에겐 이전 세대의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내가 수집하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가 세상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귀에 맴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극장의 주인공이다.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든, 평범하게 살았든 누구나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각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았을 것이다. 이들이 살아가며 가졌던 심정들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학자로서 나는 메아리로 남은 이전 세대의 목소리를 기록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세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기록은 필수적이다. 살아온 시대적 상황이 달랐기에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각 세대가 본인이 살아오며 겪은 상황과 심정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할 때 세대갈등은 해결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넘어서야 할 오르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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