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기억해야 할 날이 많다. 올해 제주 4.3항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됐고 곧 4.19 혁명 기념일도 다가온다. 전쟁도, 혁명도, 내 몸으로 겪지 않았기에 이전 세대가 겪은 상처를 오롯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일들의 의미를 기억하고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있다면 이를 마무리하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왜곡 없이 제대로 된 역사를 후세대에 전하는 것도 현 시대를 사는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 이 날은 많이 다르다. 지금도 그날 아침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텔레비전으로 가라앉는 배를 지켜보며 가슴 졸이다 ‘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안도했던 것, 불과 몇 시간 만에 오보임이 밝혀져 심장이 내려앉던 느낌, 이후 박근혜의 “구명조끼” 발언,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이들의 무너져 내리던 뒷모습과 진도체육관 바닥에 펼쳐진 이불들, 숨이 턱 막히게 나를 압도하던 안산분향소의 영정사진과 남은 이들이 보내는 절절한 메시지, 거리에 휘날리던 노란리본이 점점 바래지던 것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야 박근혜의 당일 행적이 조금 드러났을 뿐, 아직 왜 사고가 일어난 건지 원인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는 배가 가라앉던 그 시간 침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아무런 지시도, 대응도, 명령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어느 못된 왕과 신하들의 이야기도 이보다 더 참혹할까 싶다.

대통령이 바뀐 지도 1년이 다 돼간다. 최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를 새로 꾸렸지만, 3년 전 세월호 참사 특조위 위원이면서도 특조위 활동을 고의로 방해한 의혹을 받은 인물이 또다시 포함돼 논란이 많다. 갈 길이 멀다.

참사를 되새기는 마음으로, 4주기를 앞두고 세월호와 관련한 책을 찾아보았다. 새로 읽은 책도 있고 다시 읽은 책도 있다. 3년 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구입하고 책장에 이런 글을 써 놓았다. ‘읽기 전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대가를 치르기 전엔 아무 것도 끝낼 수 없다’ 많은 이들과 함께 이 날을 기리고 싶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씀 | 창비 펴냄

‘벌써 8개월이라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후로 40개월이 더 지났지만 세월호 추모 천막은 여전히 광화문에 초라하게 서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관련 도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책일 것이다. 인권운동가, 작가, 대학원생 등 열두 명이 단원고 희생자 열 세 명의 가족을 만나 참사 직후부터 240일 동안 그들이 겪은 일을 인터뷰로 풀어냈다. 녹취록을 풀 듯, 말하는 형식으로 문장이 이어져 마치 유가족이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이 생생하다. 물론 생생함의 이유가 글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아빠, 배가 기울었어요” 그래요. “인마, 배가 기울면 얼마나 기울었겠냐” 제가 제주도에서 살았기 때문에 세월호 그 배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거든요. 부산에서 제주도, 목포에서 제주도로 운행하는 카페리호보다 훨씬 큰 배였어요. 쉽게 넘어갈 배가 아닌 거죠. “아냐, 아빠 배가 많이 기울었어” 그 말을 듣고 제가 놀라서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어요. (중략) 그러면서 제일 먼저 구명조끼 이야기를 했어요. “구명조끼 입었니?” 입었대요. “구명조끼 앞으로 채웠니, 뒤로 채웠니?” (중략) 저는 마음이 급해지는 상황이었어요. “인마, 아빠가 이야기를 하면 다 듣고 움직여!” 성질을 냈어요.

“비상구가 어디 있는가 봐” “아빠, 비상구가 안 보여” “그러면 문이 보이지 않냐” 물어보니까 문도 안 보인대요. 그래서 제가 더 성질을 냈어요. “어딘가로 들어오는 문이 있었으니까 니가 거기 앉아 있지 문도 없이 어떻게 들어왔냐” 그러니까 “아빠 거기는 갈 수 없어” 그러는 거야. 아, 그 소리를 들으니까 배가 상당히 많이 기울었다는 느낌이 확 오면서 가슴이 쿵 거리더라고요] (163-164쪽,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씨 이야기 중에서)

[진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식혜를 가져와 돌아다니면서 주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막 우시는 거예요. 애 찾아가려면 먹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잘못되면 안 되니 한 모금이라도 먹으라고. 할머니들이 이제 우리 걱정하면서 막 우시니까 한 모금 넘겼는데 그게 사고 나고 처음 먹은 음식이에요. 한 모금 넘기면서 나도 울고, 할머니들도 울고] (84쪽, 2학년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씨 이야기 중에서)

[체육관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줄어가는데 그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초조하고… 내 딸이 유실됐나, 인원이 줄어드니까 머릿속이 온통 다 그런 생각밖에 안 나. 막상 내 딸이 나왔는데 나머지 유가족들을 못 보겠더라고. 여기 누구 엄마, 여긴 누구네, 여긴 선생 그다음에 나, 이렇게 넷이 다 같이 모여 있었어. 그중 나만 나왔어. 생각해봐. 다 안 나온 중에 나만 나왔다니까. 그날 미지 데리고 오는데 그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더라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지금도 다 안 나왔어. 그 사람들이 어깨 툭툭 치면서 축하한다고 그래. 근데 거기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냐고, 그 상황에서] (53쪽, 2학년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씨 이야기 중에서)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이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얘가 앨범 두 개도 못 채우는 인생을 살았구나. 얼마나 꽃다운 나이에, 엄마 아빠하고 겨우 이제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 때에… 정말 만지고 또 만져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318쪽, 2학년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씨 이야기 중에서)

수학여행을 앞두고 설레며 짐을 싸는 아이를 바라보던 순간부터 참사 당일 아침, 사고를 들은 순간, 진도로 향하던 차 안, 아수라장이 된 팽목항…. 모든 부모에게 그날 아침은 잊을 수 없고 잊으면 안 되는 아픈 기억이다.

이 책을 두세 번 읽었다. 평소 습관대로라면 책 곳곳에 연필로 줄을 그었을 텐데 이 책에는 그런 줄이 하나도 없고 책장을 접은 흔적도 없다. 유가족의 애절한 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가려낸다는 것이 죄스러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책의 몇 부분을 발췌한 이유는 짧게나마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서다. 책은 어느 곳 하나 소홀이 읽히는 부분이 없이 절절하고 애틋하다.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굳이 읽어야하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의 작가 중 한 명인 김순천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픔을 견디는 부모들이 있었기에 우리도 견딜 수 있었다. 이 세상 포기하지 않고 살아도 좋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 모두 그분들의 인터뷰 안에 촘촘히 박혀 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 진실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 다시 봄이 올 거에요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펴냄

2주기 즈음 생존학생과 희생자 형제자매의 구술기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들은 희생자와 희생자의 부모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다. ‘다시 봄이 올 거에요’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너 어디 학교니?” 하고 물어보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고 난 이후로 단원고인 걸 숨기게 됐어요. 영화관 가면 학생증을 보여주고 할인을 받는데 그때마다 괜히 찔리는 거예요. (중략)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이) 제 손을 붙잡으시더니 “아이구 어떡해. 앞으로는 힘내고 어쩌고저쩌고 살아야 해” 이래요. 좋은 말씀이긴 한데 너무 듣기가 싫은 거예요] (62쪽)

2년이 지난 후 생존자들은 사회인이 됐고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들도 힘들 것이다’ ‘상처받았을 것이다’는 추측만 할뿐, 그 누구도 선뜻 이들에게 얼마나 힘든지, 무엇이 어려운지 묻지 않았다. 아마 물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대답할 수 없는, 서로 쉽지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 질문에 스물여섯 명이 응답했고 그 결과가 이 책에 담겼다.

이 책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쓴 작가기록단이 참여해 만들었다. 구술에 참여한 생존학생과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이 작가들에게 공통으로 전해온 한 마디는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이들이 먼저 용기 내어 내민 손을 맞잡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 엄마. 나야.

곽수인 외 씀 | 문학동네 펴냄

참사 직후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심리기획가 이명수는 안산에 치유 공간 ‘이웃’을 열었다. 이곳의 치유프로그램 가운데 ‘생일 모임’이 있다. 희생학생이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여 아이를 마음에 새기고 부모님과 친구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는 치유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희생학생의 시선으로 쓴 육성시인 ‘생일시’를 읽는다. 나희덕, 도종환, 김선우 등 시인들이 아이를 대신해 쓴 시 34편의 시가 ‘엄마. 나야.’에 담겨 있다.

생일시를 읽게 된 배경에는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 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생자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바람이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시인이 대신 듣고 쓴 시들의 울림이 어떨지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김선우 시인이 쓴 ‘아빠 엄마, 저 중근이에요’의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 아빠, / 물속에서 내내 아빠 목소리 들었어요. / 절 위해 걸어둔 두산베어스 유니폼도 봤어요. “아들아, 보고 싶다!” 바닷가에서 외치는 아빠 목소리, / 물속까지 들렸어요. 점점 목이 쉬어가는 아빠 목소리, / 얼른 대답하지 못해 미안해요. / 실은 할 일이 좀 있었거든요. / 엄마, 야구 세트 놓고 바닷가에서 기다리는 엄마도 봤어요. / 너무 많이 우셔서 마음 아팠지만, / 할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늦었어요. 이해해주세요. // (중략) 우리 반 아이들 함께 있어서 외롭지도 않고요. / 우린 여전해요. 잘 떠들고 잘 웃고요. /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좀 힘들었지만 / 우린 이제 모두 괜찮은데, / 엄마 아빠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 그게 오히려 걱정이에요. / 아빠 엄마, / 여기는 편안해요. 따스하고 평화로워요. 친구들도요”

#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 김기성, 김일우 엮음, 박재동 그림 | 한겨레출판 펴냄

희생학생의 부모들이 아이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글과 박재동 화백이 그린 아이들의 그림을 모은 책이다. 솔직히 이 책은 정말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무척 힘들었다.

[내 새끼 보고 싶고, 한번 안아보고 싶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슴 저미도록 보고 싶구나. 고맙고, 미안하다.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하고, 많이 많이 칭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언니라서 더 많이 혼내서 미안하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242쪽)

부모들은 슬픔 속에서도 떠난 아이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원고지 세 장의 편지글을 기꺼이 썼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새벽, 비가 내린다. 책상 옆에는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가 쌓였다. 그래도 4주기가 되는 그 날을 맞닥뜨릴 힘이 조금 생긴 것 같다. 그날, 아이들의 영혼과 유가족, 참사를 겪은 모든 이를 위해 초를 하나 밝혀놓을 생각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글귀와 함께.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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