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13년간 미용봉사, 부평3동 공병임 미용사

▲ 신명요양원에서 5~6년째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공병임씨가 할머니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인 12월 23일 화요일 아침. 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신명요양원 자원봉사자실 바닥에도 할머니들의 하얀 머리카락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80~90세 할머니들의 백발도 마음에 드시도록 예쁘게 다듬는 공병임(48ㆍ부평3동) 미용사. “내 머리는 잘 뻗쳐. 깔끔하게 좀 잘라줘. 빨리 깎고 목욕하러 가야 돼” 깐깐한 할머니의 주문에도 소리 없이 빙긋 웃으며 정성껏 머리를 만지는 공씨는 한 달에 한 번, 쉬는 화요일이면 신명요양원을 찾는다.

20년 전, 수줍음 많은 새댁의 얼굴로 부평3동으로 이사 온 공씨는 본인의 이름을 딴 미용실로 터를 잡았다. 상냥하고 속 깊은 성격으로 이웃들에게 신임을 얻으며 지금까지도 처음의 골목을 벗어나지 않고 숍을 운영하고 있다. 미용봉사는 올해로 13년 째, 봉사를 하고 싶어서 자진해서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했단다.

“(신께서) 기술을 주셨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이웃 형님이 부녀회에서 좋은 일 많이 다니 길래 나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시작했지”

이웃 형님인 이희순(57ㆍ부평3동 새마을부녀회 총무)씨는 “봉사를 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밥벌이에만 쓰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남을 위해서 사용하니 대단해. 그러니 내가 이렇게 군말 없이 보조로 따라다녀요” 이씨는 공 미용사가 머리를 잘 자를 수 있도록 할머니에게 미용보자기를 씌워주거나 스펀지로 머리카락을 털어주는 등 짝꿍을 이룬다.

차례가 밀려 많이 기다린 한 할머니가 “보조면 어때, 할머니들 머리 자르는 게 뭐 대수야? 자네(이희순씨)가 내 머리 좀 잘라봐”라고 말하자, 이씨는 화들짝 놀라며 “어르신~ 저도 깎아드리고 싶죠~ 괜히 잘못 잘랐다가 어르신 맘에 안 드셔서 도로 붙이라고 하시면 저 어떻게 해요? 미용사분이 기술 없는 저는 머리카락만 털래요” 너스레를 떤다. 자원봉사자실에 한바탕 웃음이 넘쳐난다.

공씨가 신명요양원으로 미용봉사를 온지는 5~6년째. 오전 10시부터 12시에서 1시 사이까지 20~30명의 할머니들이 머리를 예쁘게 하려고 줄을 선다.
문을 열면서부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들어온 조정렬(85) 할머니는 “감사합니다. 눈도 와서 날도 추운데 큰 맘 먹고 오시는 거지. 이렇게들 오셔서 머리 예쁘게 만져줘서 고마워요. 다 빠져서 머리숱도 없는데 매번 잘 깎아줘서 마음에 들어. 큰 복 받을 거여. 진짜야.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들 오시잖아”라며 만족해했다.

13년을 거르지 않고 봉사를 하러 다닌 비결을 묻자, 공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한 마음이 늘 있어요. 귀한 기술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감사하고, 사람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오늘처럼 눈이 내려서 추운 날은 나오기 싫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웃기만 하는 공씨 대신에 이희순씨가 대신 말한다.
“공병임씨는 몸이 아파도 봉사를 거르지 않아요. 지난주에 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못 오게 되었는데도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하면서 결국 오늘 온 거예요. 봉사니까 한 번쯤 귀찮아 할 수도 있는데,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한지 몰라요.”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뭘. 근데 왜 나를 취재하는지 모르겠네, 더 훌륭한 봉사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신문에 안내면 좋겠는데”

“이렇게 겸손하다니까. 내가 더 자랑해야겠어. 다른 쉬는 날엔 동네 독거노인이나 거동 불편하신 분들 집으로 찾아다니면서 머리 다듬어 줘요. 그런 예쁜 마음 때문에 동에서 봉사상도 받았는걸” 이씨의 자랑에 “내가 형님 때문에 못살아” 하며 곱게 눈을 흘기는 공씨.

봉사 내내 별 거 아니라며 수줍게 웃기만 하던 공병임 미용사는 봉사가 끝나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웃 친구가 투병 중에 있는데 머리가 많이 길었을 거라며, 아직 녹지 않은 흰 눈 위로 발길을 재촉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