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코가 막혔다. 올겨울 들어 벌써 두 번째 감기다. 추운 날 얇게 입고 밖에서 배드민턴을 친 탓이다.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는 새해 다짐을 실천하려던 것이 그만 무리했나보다. 그나마 몸살까진 아니어서 앓아눕지 않은 게 다행이다.입맛이 없어 밥도 먹지 않았다. 잘 먹어야 아픈 게 낫는다는 말은 적어도 감기나 몸살의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 작년에 나온 한 연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2.26 18:48
-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큰 시장이 있다. 늘 사람으로 북적여 언제 가도 명절 대목 같다. 번잡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은 웬만해선 별 일 벌어지지 않는 심심한 일상 중 꽤 격동적인 행복이다. 나는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자주 시장에 간다. 좌판을 살피다보면 먹고 싶은 것, 필요했던 것이 속속 떠오른다. 1000원짜리 뜨끈한 순두부 한 봉지, 뿌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2.26 12:00
-
“밥 잘 챙겨 먹고, 아침에 늦잠 자면 안 돼. 둘이 싸우지 말고”친척 결혼식이 있어 부모님이 서울로 가셨다. 집엔 언니와 나만 남았다. 언니는 초등학교 4학년, 나는 2학년. 학교에 지각하지 않기, 준비물 잘 챙기기, 연탄불 꺼트리지 않기. 부모님이 신신당부한 것들이다. 그중 가장 큰 미션은 학교에서 돌아온 금요일 점심부터 토요일 점심까지, 무려 네 끼니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2.12 11:00
-
마트와 편의점에 초콜릿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아무렴, 2월이 왔으니까.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1사 분기 초콜릿 판매량은 그 해 전체 판매량의 30%를 차지한다. 초콜릿 제조회사와 마트 등 소매업소의 관련 매출도 급증하는 시기다. 가격대별, 종류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포장도 갈수록 화려하고 예뻐진다. 어딜 가도 초콜릿이 눈에 띄다보니 딱히 줄 사람이 떠오르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2.05 15:08
-
1월 31일 밤, 보름을 맞아 환하던 달이 점점 무언가에 가려지더니 얼마 후 달 전체가 붉게 변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월식이다.개기월식은 한자로 ‘달 전체에 좀이 슬다’는 뜻이다. 부분적으로 ‘좀이 스는’ 부분 월식도 있다. 달을 좀먹는 것은 바로 지구의 그림자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2.05 12:08
-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3월 어느 날이었다. 이제 막 경상도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온 터였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 가야했지만 아직 전학 갈 곳이 배정되지 않아 교육청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집엔 엄마와 나만 있었다. 새벽부터 언니와 남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아침상을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마친 엄마는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엄마가 그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29 12:17
-
며칠 전 아침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전기난로를 집안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보일러를 돌렸다. 한 시간도 안 돼 집안이 훈훈해졌다. ‘이렇게 따뜻한데 진작 틀 걸’ 혼잣말을 하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엄마가 사는 집은 서향집이라 오후가 돼야 집 안에 겨우 햇빛이 든다. 초겨울부터 온 집 안에 냉기가 돌기 시작해 1월엔 그야말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22 15:26
-
대학교 다닐 때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다. 양육환경이 좋지 않은 초ㆍ중학생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숙제를 돕거나 같이 놀기도 하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였다.내가 만나는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삐쩍 마른 진희(가명)라는 여자아이였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갔고 같이 살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몇 년 전 사망했다. 돌봐줄 친척이 없어 동네 한 아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15 13:13
-
14년 전, 친구들과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동해에 갔다. 전날 밤새 달린 덕분에 이른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해수욕장 일대에 주차해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부랴부랴 차를 대고 어두운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인파를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하늘 끝이 붉어질수록 설렘과 흥분은 커졌다. 드디어 쇳물처럼 빛나는 붉은 해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08 15:25
-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먼저 내기를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새해를 맞아 ‘책 몇 권 읽기’같은 계획을 스스로 세운 적이 있거나 그런 사람이 주위에 한 명은 있었다,에 100원을 건다.소심하게 돈을 걸긴 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글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아무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이 글을 읽을 리 없고,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08 14:55
-
연말은 연말인 모양이다. 외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자꾸 모임 일정이 잡힌다. 평소 성실하게 집밥을 먹는 처지라 어쩌다 외식할 일이 생기면 마음이 설렌다. 맛도 맛이지만, 집에선 내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는 한 밥 한 공기 먹을 수 없다. 턱밑까지 차도록 배불리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지니, 최소 하루 두 번은 몸을 움직여 밥을 차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1.02 14:25
-
4년 전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선물로 전기압력밥솥을 사주겠다고 했다. 5~6인용으로 할지, 10인용으로 할지 정해서 알려 달란다. 생각할 것도 없이 “5인용”이라고 말했다. 마침 엄마가 우리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전화를 끊자마자 내게 “밥솥은 무조건 커야한다”며 10인용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했다. 손님이 왔을 때 밥솥이 작으면 밥을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26 14:26
-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아직 한 번도 집에 난방을 하지 않았다. 내복을 입고 스웨터에 따뜻한 점퍼까지 걸치고 있으면 영하의 날씨라는 걸 잊을 만큼 꽤나 따뜻하다.지난 여름부터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미미’는 볕이 잘 드는 베란다를 자신의 공간으로 여기는 듯하다. 낮 동안 내내 그곳에서 뒹굴 거리며 낮잠을 자다가 해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26 14:17
-
생활협동조합에서 산 춘장의 색은 검지 않았다. 캐러멜 색소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춘장을 볶을 땐 춘장보다 기름을 두 배 정도 넉넉히 넣어야한다. 약한 불에서 뒤적여가며 춘장을 10분 이상 튀기듯 볶았다. 양파, 양배추, 감자 등을 볶은 뒤 기름에 튀긴 춘장을 넣어 함께 볶다가 물을 붓고 끓였다. 마지막에 전분 물을 풀어 넣고 한소끔 끓이니 연갈색의 걸쭉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18 22:16
-
두 달 전 이사를 한 뒤부터 불편한 증상이 생겼다. 손닿는 곳마다 ‘딱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정전기가 심했다. 옷과 이불을 세탁할 때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건 이사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손끝이 따끔거리는지 문손잡이를 잡거나 컵을 만지기도 겁이 났다. 컴컴한 이불 속에선 불꽃 튀는 것도 보였다.세 달 전부터 함께 사는 고양이는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11 15:03
-
‘처음’이라는 말에는 불안, 설렘, 용기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 것 같다. 난생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을 때 선뜻 여행가방을 들고 나서지 못한 건 뭔가 불안해서였다. 하지만 꼭 그만큼 설레기도 했다.나를 집 밖으로 내몬 것은 용기가 아닌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였다. 오래 전부터, 혼자 여행을 한다면 땅이 꽝꽝 언 겨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11 14:36
-
“네가 전화하라고 했잖아”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입사동기로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 무슨 일인지, 대뜸 내게 바다가재를 사주겠다고 했다.14년 전 당시엔 랍스타(로브스터로 읽음) 음식점이 한창 유행이었다. 바다가재 요리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나선 터였다.새빨간 바다가재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2.03 21:41
-
탄산음료나 맥주를 마실 때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물질은 음료 안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다. 지금은 상식이 됐지만 불과 250년 전만 해도 이산화탄소나 산소처럼, 우리를 죽이고 살리는 여러 기체에 대해 과학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탄산수가 만들어진 과정에는 기체의 실체에 서서히 접근해가는 근대 과학의 역사가 담겨 있다.1640년대 벨기에의 반 헬몬트는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1.27 14:31
-
날이 추워지니 몸이 움츠러든다. 생강차를 한 주전자 끓여 놓고 종일 오며가며 마신다. 갑작스런 추위에 아직 몸이 적응하지 못했는데 며칠 사이 눈이 두 차례나 내렸다. 겨울이 성큼 내 옆에 와 있다.전기장판을 켜놓고 누워 있다가 목이 말라 겨우 일어났다. 싱크대엔 어젯밤 라면을 끓여먹고 씻어 놓지 않은 그릇들이 쌓여 있다. 못 본 척 하려다가 ‘일어난 김에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1.27 12:00
-
200자 원고지 열 장 안팎의 짧은 글을 주로 쓴다. A4용지 한 장이 채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서른 장 안팎 분량의 글을 여러 편 써야 할 일이 생겼다. 기한은 내년 초. 갑자기 호흡이 긴 글을 쓰려니 막막했다. 컴퓨터 빈 화면만 열어 놓고 첫 문장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석 달이 흘렀다. 글 한 편 쓰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생각해보면 분량이 늘어난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7.11.20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