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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다 끝났어. 이제 걱정 없어!”조카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남자아이다. 우린 한때 꽤 친했다. 굳이 ‘친했다’고 과거형을 쓴 이유는 조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바빠져 나와 소식을 주고받는 일도, 만나는 일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조카가 먼저 연락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그런 조카가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느냐고 연락해왔다. 목적이 있었다. 우리 집 고양이 ‘미미’를 보는 것이다. 미미가 길고양이였던 시절, 조카와 함께 밥을 챙겨준 적이 있어서인지 조카는 미미에 대한 애정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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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만 되면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벌써 넉 달째다. 소리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먹을 걸 넣어주는 것. 어쩔 수 없이 야식으로 뱃속을 잠재운다.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밤늦게 먹고 나면 치우기가 몹시 귀찮다는 점이다. 며칠 전엔 시장에서 사 온 찐만두를 먹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치운다는 것이 그만 꼬박 이틀을 넘기고야 말았다. 그 사이 간장을 덜어 놓은 그릇엔 네모난 소금 결정이 생겼다. 뚜껑을 덮어 놓지 않아 간장의 물이 증발해, 물속에 숨어 있던 소금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지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물질을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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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얼마 전 며칠 동안 비닐 분리수거가 안 됐을 때, 그제야 내가 비닐봉지에 둘러 싸여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뭔가를 먹거나 물건을 살 때마다 비닐이 나왔다. 간단히 음식이라도 해먹을라치면 채소를 비롯해 여러 재료를 담았던 용기와 비닐들이 수북이 쌓였다. 잠시 내 손에 쥐어졌던 그 비닐들은 금세 쓰레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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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외식을 할 땐 무엇을 먹을지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엄마는 면이나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모든 국수 종류와 햄버거ㆍ스파게티ㆍ피자는 제외다. 기름기 많은 중국요리도 질색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손자들을 위해 그냥 함께 먹어주는 정도다. 찌개나 탕은 건더기만 겨우 건져 먹을 뿐 국물엔 숟가락도 대지 않는다. 비싼 돈을 들여 왜 그리 밍밍하고 물컹한 걸 먹는지 알 수 없는 것, 바로 생선회와 초밥이다. 횟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 엄마 덕분에 물고기는 목숨을 부지한다.엄마가 원하는 건 오로지 밥과 고기다. 특히 갈비는 외식을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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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야외공연장에서 탈춤 공연을 봤지요. 굉장히 속이 후련해지고 흥이 나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이거 꼭 해야겠다고”차부회(61·사진) 선생은 한평생 걸어온 탈춤 인생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국가무형 문화재 61호 은율탈춤 보유자다. 답답했던 스무 살 청년 의 가슴을 흔들어 놓은 탈춤. 어쩌면 탈춤과의 인연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그의 어머니는 봉산탈춤(국가무형문화재 17호)과 강 령탈춤(국가무형문화재 34호) 보유자였던 고(故) 양소 운 선생이다. 열한 살부터 예인의 길에 들어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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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만 한 플라스틱 공들이 내 입 안에 가득 들어왔다. 삼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공은 점점 커졌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다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 검은 것이 어른거렸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내 목에 몸을 걸치고 엎드려 있다. 요 녀석 때문에 잠깐 낮잠도 못 잔다. 어쨌든 꿈이라서 다행이다.봄에는 낮잠이 꿀맛이다. 한참 글을 쓰다가 뉴스를 보면서 쉬려고 누웠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 미세플라스틱 관련 뉴스를 본 것이 답답한 꿈의 원인이었을까. 미미를 버르장머리 없이 키운 탓일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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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모두 이달에 포진해 있다. ‘가정’은 어떤 뜻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로 정의한다.그렇다면 가족은 누굴까.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짐’이라고 나온다. 여기서 ‘부부’는 ‘남편과 아내’, 친족은 ‘촌수가 가까운 일가’를 뜻한다. 몇 촌까지 가깝다고 볼 수 있는지 정해진 것은 없다. 부부가 중심이지만 이마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5.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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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채소나 과일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지만 엄연히 제철이 있다. 제철 먹거리는 맛과 향이 진하고 풍부하다. 신선할 뿐만 아니라 영양도 가득하고 값도 저렴하다. 제철 먹거리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이나 마트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 잔뜩 쌓여 있는 채소나 과일은 대부분 제철을 맞이한 것들이다.아보카도는 더워지기 시작하는 지금부터 여름까지 제철이다. 작년 이맘 때 난생 처음 아보카도를 구입했다. 아보카도는 멜론이나 바나나처럼 덜 익었을 때 수확해 실온에서 천천히 익혀 먹는 후숙 과일이다. 실온에 며칠 놔두면 아보카도의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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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 평소 말수가 적고 차분했던 짝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흐리고 바람 부는 날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어” 그러더니 나를 획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나갈래?” 헉.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납게 바람이 불고 구름이 잔뜩 긴 날엔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싶은데, 이 친구는 어느 때보다 설렌 표정이다. 물론 친구는 선생님들의 감시를 뚫고 혼날 위험을 감수하며 교실 밖으로 나갈 만큼 배포가 크지 않았다. 그 자율학습시간 내내 교문으로 향하는 넓은 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이었다.그때까지만 해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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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 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으로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아파트 1층 입구에 안내문이 붙었다. 집안에 있는 수도계량기를 지하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집집마다 화장실에 수도계량기가 있다 보니 매달 마지막 날이면 한 달 동안 사용한 수돗물 량을 현관문에 적어 놓아야했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잊지 않기 위해선 꽤 신경을 써야 했다. 번거롭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신 공사를 하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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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 때 반 친구들의 보충수업비를 내가 걷게 됐다. 1990년대엔 수학여행비나 보충수업비처럼 수업료 이외에 필요한 비용은 반마다 현금으로 걷어 담임에게 내야했다. 그때마다 학생들 중 한 명이 그 일을 담당했다. 학급 간부도 아니었는데 왜 내게 그 일을 시킨 건지, 그때도 지금도 모른다.보충수업비는 몇 천 원 정도로 큰돈은 아니었다. 대부분 기한 내 돈을 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끝까지 내지 않았다. 어서 달라고 말해야했지만 망설이기만 했다. 그 친구의 집안 사정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집을 나가 할머니와 살고 있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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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채소들이 나오면서 냉장고에 빈틈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달에 이미 미나리와 샐러리로 장아찌를 담갔다. 달래 두 묶음을 사 와 양념간장도 한 통 만들었다. 짜디짠 장아찌에 매실청ㆍ레몬청ㆍ청귤청ㆍ사과청 등 각종 과일청까지, 냉장고 칸칸이 차지하고 있다.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으려는지 만드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만든다. 지금은 오이 값이 내려가길 기다리고 있다. 여름밥상을 채워줄 장아찌와 피클을 만들어야 하니까.열거한 식품의 공통점은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든 지 만 3년이 다 되어가는 깻잎장아찌는 여전히 특유의 향
사회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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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엔 기억해야 할 날이 많다. 올해 제주 4.3항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됐고 곧 4.19 혁명 기념일도 다가온다. 전쟁도, 혁명도, 내 몸으로 겪지 않았기에 이전 세대가 겪은 상처를 오롯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일들의 의미를 기억하고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있다면 이를 마무리하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왜곡 없이 제대로 된 역사를 후세대에 전하는 것도 현 시대를 사는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그런데 내게 이 날은 많이 다르다. 지금도 그날 아침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2014년 4월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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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핸드폰 메시지가 왔다. 저녁 밥상을 찍은 사진이었다. 현미밥과 미나리초무침, 시금치나물, 양배추샐러드, 땅콩조림, 굽지 않은 김과 간장이 올라와 있었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나는 감탄했다. 1년 전만 해도 엄마의 밥상이 이렇게 달라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작년 봄, 엄마는 한 달이 넘도록 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설사병의 원인은 갑자기 먹은 상추였다. 식구들의 삼시세끼를 해먹인 기간이 무려 40년. 결혼 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길다. 우리가 한참 클 때는 서로 밥 먹는 시간이 달라 하루에 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4.0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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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겨울옷을 빨고 있다. 뭔가 정리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별 수 없다. 옷걸이에 걸 수 있는 양은 한정돼있으니 계절이 지난 옷은 집어넣는 수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3.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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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조림 먹는 재미에 빠졌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훈제고등어 통조림을 판매하는 걸 보고 맛이 궁금했다. 상품 평을 보니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어, 일단 몇 개만 구입했다. 맛은 역시나! 신은 내게 아무 것이나 잘 먹는 입맛을 선물로 주신 게 틀림없다.내용물의 맛도, 양도, 가격도 모두 맘에 들었다. 공동구매로 값이 더 내려가길 기다렸다가 통 크게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3.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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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의 일이다. 동네에 작은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오전 시간에 책 대출과 반납을 처리하는 자원봉사를 했다.그 도서관 옆에는 초등학생 방과 후 활동을 돕는 지역아동센터가 있었다. 지역아동센터와 도서관은 현관을 함께 사용했고 출입구만 달랐다. 어느 한 곳에서 마이크를 사용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면 다른 곳까지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그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3.1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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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책방은 한 달에 한 번 한 가지 주제와 관련한 여러 책을 소개합니다.재작년 봄, 한 친구가 씨앗 몇 개를 줬다. 바질과 상추 씨였다. 우리 집엔 해가 드는 베란다가 없었다. 대신 동남쪽에 큰 창문이 있어 아침나절엔 햇빛이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화분흙과 퇴비를 주문해 씨앗을 심었다.창틀에 화분을 놓고 밤낮으로 화분을 내놓았다가 들여놓기를 반복했다. 바
교양
심혜진 기자
2018.03.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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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한 턱 쏠 일이 생겼다. 내가 치킨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남편은 회를 좋아한다. 오랜만에 소래포구에서 회를 먹기로 했다. 수조에서 아가미를 여닫고 있는 물고기를 볼 때면 위선인지 죄책감인지, 하여간 물고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남편이 고른 광어 한 마리가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하얀 살점으로 바뀌어 접시에 올라왔다. “회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3.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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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우유에 바나나가 없고, 딸기우유에 진짜 딸기가 단 1%도 없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과즙이나 과육 대신 인공 향과 색소가 과일 행세를 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애용해온 바나나우유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 뉴스 보도 후 바나나우유의 명칭은 35년 만에 바나나‘맛’우유로 바뀌었다.나는 뉴스가 보도되기 훨씬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8.03.05 16:46